국제경쟁력 및 성장잠재력과 환율 중 어느 것이 앞서는가
경제에 있어 독립적인 변수는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경제의 변수들은 서로 크든 작든 관련을 맺고 있다. 그중에서도 어떤 변수들은 서로 밀접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 어느 한 변수가 원인으로 작용하여 어떤 특정의 결과를 빚어내면 그 결과는 다시 원인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결과를 빚는다. 결과가 다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계기적인 변동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눈앞에 벌어지는 경제현상을 만든다. 국제경쟁력 혹은 성장잠재력과 환율은 그런 대표적인 변수들이다.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상대적으로 더 높으면 국제수지(종합)가 흑자를 나타내며, 국제수지가 흑자를 나타내면 외환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환율은 하락하고 국내 통화의 대외가치는 높아진다. 국내 통화의 대외가치가 높아지면 물가는 안정된다. 그리고 국제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면 부는 점점 더 많이 축적되고, 이런 자본축적의 증가는 이자율을 낮추고 투자를 활성화시켜서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더욱 향상시킨다.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의 향상은 다시 국제수지 흑자를 키운다.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룬 나라들은 거의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세계대전 후의 독일과 일본도 그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4마리 용들도 그랬다.
만약 국내 통화의 대외가치가 지나치게 빠르게 상승하면 즉 환율이 지나치게 빠르게 하락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수출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지고, 수입의 가격경쟁력은 높아져 국제수지는 적자를 기록한다. 국제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면 환율은 상승하고 물가는 불안해지며 국부가 유출되면서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은 취약해진다. 그리고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면 국제수지 적자는 더욱 커지기도 한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다시 말해 국내 통화의 대외가치 상승이 어떤 경우에는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반해 어떤 경우에는 이를 잠식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다른 성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인과관계를 맺고 있는 경제변수들 사이에 나는 속도의 차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두 변수 중 어느 것이 앞서 가는가를 알면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앞서 가고 통화의 대외가치가 그 뒤를 따른다면 이런 경우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의 향상이 국제수지 흑자를 부르고 이것이 통화의 대외가치 상승을 부르며 통화의 대외가지 상승은 생산성향상을 촉진함으로써 다시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 향상을 부른다.
반면 통화의 대외가치 상승이 앞서가고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그 뒤를 따른다면 이런 경우 악순환이 발생한다. 통화의 대외가치 상승이 국제경쟁력 약화를 부름으로써 국제수지 악화를 낳고, 국제수지 악화는 국내 자본과 소득의 해외 유출을 일으켜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 약화를 부르며,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 약화는 국제수지 악화를 부르는 과정을 반복한다.
경제의 역사는 바로 이런 인과관계의 계기적 반복에 의해 기록되었다. 따라서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의 향상이 통화의 대외가치 상승보다 앞서 나가게 하는 것이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에 경제정책의 묘미가 있다.
간단히 말해 통화의 대외가치가 국제경쟁력의 향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상승하지 못하도록 정책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전제조건인 셈이다. 환율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경제발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환율정책은 국내적인 정책과 대외적인 정책의 2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통화의 대외가치 상승이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 상승을 넘어서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국내 통화가치의 하락속도가 다른 나라의 통화가치의 변동속도보다 더 빠르지 않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물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안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이 두 정책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실패하면 그 나라는 쇠락의 길을 걷고, 두 정책에서 모두 성공하면 그 나라는 번영의 길을 걷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환율이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시 말해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의 향상속도가 빠름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떨어지는 속도가 그에 훨씬 더 못 미치는 일이 벌어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당연히 국제수지 흑자는 점점 더 커진다. 국제수지 흑자가 커지면 국내 자본축적이 점점 더 커지고 국내 투자의 수익성은 점점 더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나며, 이에 따라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다른 나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다.
해외 투자는 국내 소득의 해외 이전을 의미한다. 이처럼 국내 소득이 해외로 이전되면 국내 수요가 부족해짐으로써 국내 경기는 부진해진다. 내수가 부족해지면 수출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 수출이 총수요를 지탱해 주는 유일한 방법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는 더욱 커지는 경향이 있으며 결국은 악순환이 벌어지고 만다. 일본과 독일 경제가 1990년대 이후 초장기 저성장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만이 최근 비교적 장기간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제수지 흑자가 쌓이면서 해외 투자가 늘어났고, 해외 투자는 소득의 해외 유출을 의미했다. 소득의 해외 유출은 내수의 부족을 초래했고, 경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출에 더더욱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일본과 독일의 전철을 그대로 뒤따른 것이다. 환율정책은 그만큼 국민경제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나라들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쯤 신중하게 재검토해야 할 때다. 이 문제는 뒤에 경제병리학을 다루면서 다시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환율정책의 대표적인 실패사례
그동안 우리나라는 환율정책에서 실패를 거듭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펼친 환율정책은 그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명박 정권은 환율을 인위적으로 상승시켜 수출을 늘리고 수출이 늘어나면 경기가 상승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환율이 급등하면서 우리 돈으로 환산한 수출이 급증했으나 2008년 4/4분기의 성장률은 -16.8%를 기록했을 정도로 국내 경기가 추락했다. 이러한 환율정책의 실패는 다른나라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역사상 환율정책의 극적인 성공과 실패를 맛본 나라들은 수없이 많지만 대표적인 사례로 1920~1930년대의 영국과 프랑스를 들 수 있다. 영국은 전형적인 실패 사례고, 프랑스는 성공에 이어 실패를 맛본 사례다. 이들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나라의 환율정책에도 교훈을 주지만 환율변동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좋은 교재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환율변동 속에서 우리의 삶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 지금부터 이 2가지 사례와 우리나라의 사례를 차례로 살펴보자.
우선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인도 대륙, 아프리카 대륙 동남부의 대부분, 대양주와 캐나다 등 세계 최대의 식민지를 보유한 나라였다.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별칭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영국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초강대국이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에는 프랑스와 연합전선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거의 대부분을 독일에게 점령당할 정도로 영국은 무기력했고, 미국의 참전이 이뤄진 뒤에야 비로소 독일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초기에 왜 영국은 독일에게 이처럼 쉽게 밀릴 수밖에 없었을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영국이 환율정책의 실패로 인해 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장기간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1930년대 중반 이후 경기가 뒤늦게 어느 정도 회복되긴 했으나 경제난은 여전히 심각했다.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을 받아 북서부 지방을 점령당했고 수도인 파리까지 위협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이후 종전협정을 체결할 때는 독일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시는 강대국이 되지 못하도록 각종 제재조치를 강구하고 독일의 재무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면서 가혹한 배상금까지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불과 20여 년이 지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의 침략으로 국토의 대부분을 점령당하고 말았다. 이미 침략을 받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는 독일의 재무장에 제재를 가하기는커녕 자국의 재무장조차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경제난이 심각했다. 그리고 이 경제난 역시 환율정책이 실패한 결과였다.
<다음에 이어서>
<회의주의자를 위한 경제학(최용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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