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율과 통화정책
이런 의미에서 외환위기에 자주 노출되는 나라에서는 환율을 목표로 통화를 관리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정책일 수 있다. 환율은 통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가치를 안정시키는 것이 통화정책의 첫째 목표라면 물가나 이자 등으로 표현되는 통화가치뿐 아니라 환율로 표현되는 대외가치를 안정시키는 것도 필수적이다. 환율을 목표로 통화를 관리하는 정책을 펼치면 외환위기도 막을 수 있고 그에 따른 금융위기도 피해갈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정책을 펼쳐 성공을 거둔 나라가 있다. 바로 1990년대의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외환위기가 간헐적으로 반복됨에 따라 초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 1980년대 중후반 내내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 1993년 재무장관으로 취임한 엔리케 카르도수(Fernando H. Cardoso)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헤알화를 달러에 연동시키는 정책을 선택했다. 이 정책은 물가를 획기적으로 안정시킴으로써 1990년대 중후반 비교적 장기간의 고도성장을 이룩할 터전을 마련했다. 물론 환율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수지의 안정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국제수지가 안정되어야 환율이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라질은 국제수지가 적자를 지속함으로써 1990년대 말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었고, IMF와 미국 등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적극적인 구조조정 등 개혁을 통해 국제수지를 개선시킬 수 있었는데, 이에 따라 환율이 안정됨으로써 물가가 안정되었고, 물가가 안정되자 국제경쟁력은 물론 성장잠재력까지 커졌다. 결국 브라질은 2000년대 이후 인도와 러시아, 중국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들인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 꼽히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보다 먼저 페소화를 달러화에 연동시키는 정책을 펼쳐 큰 성공을 거뒀다. 1990년에 물가상승률이 2%에 이르자 카를로스 메넴(Carlos S. Menem) 대통령은 도밍고 카바요(Domingo Cavallo)를 재무장관에 기용해 페소를 달러에 1:1로 고정시켰다. 그 결과 1991년 말에는 물가상승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물가가 이처럼 안정되자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경제호조가 비교적 장기간 지속되자 불행하게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묽어지면서 경기는 과열로 치달았고 국제수지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1년 말에는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면서 다시 외환위기가 터지고 말았다. 아르헨티나는 구조조정 등 개혁을 주저하다가 경제난이 한층 더 심각해졌고, 그 기간도 브라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더 길어져, 1999년부터 2003년까지 4년 동안이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결국 강력한 구조조정 등 개혁을 단행하게 되었고, 다행히 2003년부터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통화결정의 운동원리
소득결정이론에서는 경제저량과 경제유량 그리고 체제변동이 삼쌍성의 운동을 하면서 소득수준을 결정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 이 소득이 상응하는 것이 통화결정이론으로서 소득결정이론의 한 부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통화결정이론에서 결정되는 통화는 소득결정변수인 경제저량 및 경제유량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통화이론에 있어서는 경제저량과 경제유량의 개념 및 역할이 조금 다르다. 경제저량으로서의 통화는 금융산업 또는 금융시장을 의미한다. 금융산업이 경제저량으로서의 통화를 근원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유량으로서의 통화는 적정증가율로 봐도 좋다. 소득의 경제유량이 잠재성장률을 규정하듯이 경제유량으로서의 통화는 적정증가율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먼저 경제저량으로서의 통화를 결정하는 금융산업에는 발권은행으로서의 중앙은행은 물론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기반으로 신용을 창조하는 상업은행과 특수은행, 투자기관과 저축기관, 보험기관 등이 형성하는 간접 금융 시장이 포함된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기반으로 직접 신용창조를 하지는 않지만 경제 내에서 엄연히 통화의 역할을 하는 증권들을 창출하는 단기금융 시장, 채권시장, 주식시장, 파생금융상품 등의 직접금융 시장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그런데 간접금융시장과 지금 시장은 엄격히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간접금융 시장과 직접금융 시장에서 이뤄지는 신용창조의 원천과 과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간접금융 시장에서의 신용창조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가 그 원천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가 경제체에 공급되면 이것이 금융기관에 예금되고, 금융기관은 이것을 다시 경제체에 대출하는 등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신용창조를 하는 것이다.
반면 단기금융 시장, 채권시장, 주식시장, 파생금융상품 시장 등의 직접 금융 시장이 발행하는 각종 증서는 가치창조의 원천이 기업(금융기관 포함)의 신용과 수익성이며, 신용 창조도 각 증권의 가치상승과 통화기능 향상에 의해 일어난다. 물론 직접금융 시장도 중앙은행의 발권량은 물론이고 중앙 은행이 결정하는 이자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금융 시장에서 일어나는 신용창조의 원천과 과정은 간접금융 시장에서와는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간접금융 시장에서 이뤄지는 신용창조와 직접금융 시장에서 이뤄지는 신용창조는 분리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식시장과 파생금융상품 시장의 신용창조는 한국은행이 공급하는 화폐량보다는 소득수준의 변화 즉 경기동향에 더 큰 영향을 받고 다시 되돌려주는 경향이 있으며, 신용창조에 있어서도 거의 제한을 받지 않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경제의 성장과 안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의 안정과 발전이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경제유량으로서의 통화는 금융산업이 실제로 창출해내는 통화를 의미 한다. 경제저량으로서의 통화가 현재의 통화수준을 창출해내는 제도적 기반이라면 경제유량으로서의 통화는 그 제도적 기반이 창출해내는 적정통화 증가율이다. 역으로, 현재의 통화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경제저량으로서의 통화라면 현재의 적정통화 증가율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저량으로서의 통화다. 통화의 수준은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결정되고, 문화의 적정증가율은 경제의 체력, 즉 성장잠재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음에 이어서)
<회의주의자를 위한 경제학(최용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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