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화의 종류와 통화의 기본기능
소비하는 즐거움을 주는 재화와 돈 버는 즐거움을 주는 재화 사이에는 그 경제적 기능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주로 현재의 소득에 의해 소비되는 재화로서 그 경제적 기능은 이미 현 경제학에 의해 충분히 밝혀졌다. 간단히 말해 이러한 재화의 생산은 소득을 낳고 소득은 분배되며, 분배는 재화의 소비를 뒷받침함으로써 경제의 순환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경제의 이런 순환구조는 현 경제학의 일반균형체계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즉 생산은 모두 분배되고, 분배된 소득으로 생산한 제품을 모두 소비함으로써 경제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반면 후자는 주로 과거 소득의 축적에 의해 소비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 특성이 경기를 변동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재화들 중에서 생산시설은 현 경제학에서도 그 기능이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져 있다. 실은 물론 생산시설의 투자가 경기를 변동시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시설의 견설을 가능케 하는 자본축적이 필수적이다. 또한 생산시설 건설에는 대규모 자본이 소요되는데, 이는 단속적인 특성이 강해 흔히 경기변동을 일으키곤 한다. 즉 수요가 늘더라도 생산시설은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야 한꺼번에 늘어나면서 경기의 급상승을 부르고, 한거번에 늘어난 생산시설은 공급과잉을 부름으로써 경기를 하강시키곤 한다. 현 경제학은 이를 '투자의 가속도원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현 경제학은 부동산이나 금융상품, 외환상품, 기업 및 상표권 거래 등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하게 외면한다. 현실에서는 이런 재화들이 투자의 가속도원리 못지않게 경기변동을 일으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이는 통화의 기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 경기변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통화란 경제에 있어 우리 몸의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한다. 위장이 흡수한 영양을 혈액이 신체 곳곳에 전달하듯이 통화도 생산된 재화를 경제의 각 부문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몸의 심장과 핏줄 등 혈관계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경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곤 한다. 최근 세계 경제가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은 것이나 이에 따라 경제난이 점점 더 심각해진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통화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크게 2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거래수단의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저장 수단의 기능이다. 그 밖에도 통화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교환단위, 회계단위, 지불수단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고 이 기능 역시 중요하지만 이것들은 파생적인 기능일 뿐 통화의 기본적인 기능은 거래와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기능이다. 이 2가지 기능이 거래와 생산 등의 경제활동을 직접적으로 촉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동산이나 금융상품, 외환상품, 거래되는 기업 등의 모든 돈버는 재화들은 통화의 특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통화의 일종인 은행예금보다는 많은 경우 이런 재화들의 거래나 가치저장 기능이 훨씬 뛰어나다. 특히 금융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이 호조를 보일 때 사람들은 예금을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주식 등의 금융상품과 부동산을 팔아 다른 용도에 사용하고 한다. 그 가치가 상승함으로써 훌륭한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 시장이 침체되면 이러한 재화들은 통화기능이 크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거래도 부진해지고 가격 역시 크게 떨어진다.
다라서 돈 버는 재화들은 통화기근의 변동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이에 따라 경기 변동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제병리 현상을 일으키는 것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돈 버는 재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경제의 변동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돈 버는 재화의 경제적 특성과 역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경제의 변동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없고, 이 경우 개인과 기업은 파산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며 국민경제는 파국적 위기에 직면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돈 버는 재화들은 과거 소득의 축적에 의해 주로 거래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돈 버는 재화는 소득이 일정 기간 축적되어야 소비가 이뤄지므로 그 수요가 일어날 때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하고, 한 번 수요가 일어나면 짧은 기간 안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 가격은 비교적 오랜 기간 정체하다가 한거번에 상승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런 특성은 수요의 시간이동을 부른다. 가격이 상승을 지속할 경우 저축이 좀 더 만이 이뤄져야 미래에 일어날 수요까지 현재의 수요에 가세하는 것이다. 저축이 충분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가격이 더 많이 올라 오히려 손해를 보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돈을 빌려 돈 버는 재화를 사는 것이 더 유리하므로 미래의 수요까지 현재의 수요에 가담하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래의 수요가 현재의 수요에 가세하면 가격은 당연히 폭등하곤 한다.
또한 수요의 시간이동은 머지않아 수요의 공동화를 부르게 마련이다. 수요가 이동해갔으므로 수요가 공동화한 때가 반드시 닥치고, 그러면 가격은 폭락하거나 장기간 정체된다. 가격의 이런 갑작스런 변동은 경기의 갑작스런 상승과 하강을 함게 부른다. 한마디로 돈 버는 재화는 경제의 변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경제학이 이 재화를 외면하는 것은 경제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에 이어서)
<회의주의자를 위한 경제학(최용식)..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