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공급의 운동원리
현실경제에서는 신용창조의 운동원리뿐 아니라 종종 신용수럼의 운동원리가 작동한다. 예를 들어, 불경기가 닥쳐서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 금융기관의 대출채권은 줄어들지 않을 수 없고, 이 경우 금융기관은 자기자본비율과 지불준비율을 조정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으므로 예금도 줄게 된다. 예금이 줄면 금융기관은 자기자본비율과 지불준비율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 등으 악순환의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신용수렴의 운동원리다.
현 경제학은 신용수렴 현상을 애써 외면해 왔기에 경제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다. 신용창조 과정이 자연스런 현상이라면 그 반대인 신용수렴 과정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신용수렴 운동은 일반적인 경우 압력으로만 작용할 뿐이어서 그 충격은 대부분 경제에 의해 흡수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때도 신용수렴 압력이 경기를 결정적으로 하강시킨다. 무엇보다 역사상 대부분의 금융공황은 이런 신용수렴원리에 의해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외환위기 직전에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었다. 이 신용수렴의 운동원리는 비록 그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고 쉽지만 미래경제학의 독창적인 개발품이다. 이것은 현 경제학계가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이론 중 하나로서 조만간 학계의 평가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처럼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경제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신용수렴의 작용은 주식 및 부동산 그리고 파생금융 상품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현실적으로 금융기관의 자기자본비율과 지불준비율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거대한 기업이 망하거나 심각한 예금인출 사태가 그리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금융기관이 보유한 주식 등이 유가증권과 담보로 확보한 부동산 등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일은 상대적으로 더 흔하게 벌어진다. 이에 따라 파생금융 상품의 가격도 크게 떨어짐으로써 큰 충격을 주곤 한다. 또 이러한 일이 자기자본비율과 지불준비율을 위협할 정도가 되면 본격적으로 신용을 수렴시키는 사태가 종종 일어난다. 세계 대공황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통화공급의 적정수준
경제는 순환하고 성장하는 유기체이므로 통화 역시 순환과 성장이 순조롭게 이뤄져야 한다.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우리 몸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성장도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통화공급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물가불안이 나타나고, 물가불안이 나타나면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통화공급이 적절한 수준을 유지할 경우 경제의 성장과 순환이 안정적으로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통화공급은 어느 수준이 적정할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소득결정 운동원리를 일으키는 구성분자 중 하나인 경제유량, 즉 잠재성장률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구성분자의 하나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물음에는 이미 답이 주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물가불안이 나타나지 않을 수준에서 통화를 충분히 공급해야 경제가 안정적으로 순환하고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다. 현대의 거의 모든 통화당국이 물가연동제를 채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화폐발행을 크게 늘려도 물가불안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최근 세계 각국은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통화를 크게 증가시켰다. 미국은 2008년에 본원통화를 2배나 증가시켰고, EU는 36.7% 증가시켰다. 그러나 물가는 다른 어느 때 못지않게 안정적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화폐발행은 신용창조를 하는데,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기가 부진해지자 신용창조의 신용승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둘째, 경기가 부진해지면서 통화의 유통속도가 크게 느려졌기 때문이다. 셋째, 통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경기가 부진해지면서 이들의 기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3가지 이유로 화폐발행이 급증해도 물가가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향후에도 물가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 보장할 수는 없다. 만약 경기가 장차 상승으로 돌아선다면 신용창조의 신용승수도 커지고 통화의 유통속도도 빨라지며, 통화의 기능도 향상될 것이다. 그러면 통화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물가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환산될 수도 있다. 따라서 향후의 통화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경기가 상승하는 정도에 따라 적절한 긴축정책을 펼치치 않으면 물가상승의 악순환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경기동향과 출구전략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화폐발행에 신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미국과 EU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본원통화를 표와 같이 크게 증가시킨 것은 신용수렴원리의 작동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긍융공황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세계 경제는 경제공황에 빠져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본원통화의 큰 증가는 경제적인 중병을 예방하고 치유한 처방약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모든 약이 그렇듯이 부작용과 휴유증은 피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이를 최소화시킬 것인가는 향후의 정책과제다.
통화수요의 운동원리
한때나마 통화량을 직접 관리하는 통화정책이 각광을 받았던 것은 새로운 '통화수량설'의 대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고전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 학설에 따르면 통화관리는 언제든지 가능하며 대체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 이 학설은 통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소득과 물가와 국제수지 등은 스스로 안정을 유지하고 국민경제도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70년대 말 미국에서 그들이 주장한 정책이 시행되자 이자율이 급격히 상승해 경제가 오히려 더 불안해졌고, 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다음에 이어서)
<회의주의자를 위한 경제학(최용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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