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교역과 환율
우선 교역의 확대는 시장의 확대를 의미하며 시장의 확대는 분업을 촉진하는 경향이 있다. 분업이 촉진되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생산량을 산출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분업이 이뤄지면 일이 단순해짐에 따라 생산성이 그만큼 향상되고, 단순한 작업은 생산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키며, 교역의 확대는 규모의 경제라는 효과까지 발휘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국제교역은 비교우위의 효과를 발휘한다. 비교우위의 효과가 발휘되면 세계적으로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나타나고, 이로써 경제는 당연히 성장을 지속한다. 비교우위의 이러한 효과는 데이빗 리카도의 비교우위설에 의해 이미 이론적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비교우위설은 이론적으로는 물론이고 현실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므로 구체적인 예를 들어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갑이라는 나라는 쌀과 옷을 60단위와 30단위를 생산하고, 을이라는 나라는 각각 30단위와 20단위를 생산할 경우 두 나라 사이에는 비교우위가 존재한다. 즉 쌀을 생산함에 있어 갑은 옷을 생산하는 양보다 2배나 더 생산할 수 있으나 을은 1.5배만 생산할 수 있다. 반면 옷을 생산함에 있어서 는 갑이 쌀의 절반밖에 생산하지 못하지만 을은 그 절반보다는 더 큰 3분의 2를 생산할 수 있다. 이를 비교우위라고 부르는데, 갑은 쌀을 생산하는 일을 상대적으로 더 잘할 수 있고, 을은 옷을 생산하는 일을 상대적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경우 국제분업이 이루어지면 전체적으로 생산량은 확대된다. 갑과 을이 쌀과 옷을 각자 모두 생산할 때는 갑이 생산한 90단위와 을이 생산한 50단위를 합한 140단위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갑이 옷을 포기하고 쌀만 생산할 경우 120단위를 생산할 수 있고, 을은 쌀을 포기하고 옷만 생산할 때는 40 단위를 생산할 수 있게 됨으로써 모두 합하여 160단위를 생산할 수 있다. 국제분업이 이루어지면 전체적으로는 20단위를 더 많이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1930년대에 발생한 세계 대공황이 마냥 악화의 길을 걸었던 것도 이러한 국제교역의 원리가 역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경제사정이 악화되자 각국 정부는 관세를 올리는 등 보호무역의 장벽을 더 높이 쌓았고, 이에 따라 비교우위의 원리가 축소재생산의 방향으로 작동하고 만 것이다. 물론 여기에 신용수렴에 따른 금융공황까지 가세하면서 경제재앙을 더욱 키웠지만 보호무역도 그에 못지 않게 세계 대공황 심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제교역은 국제경쟁의 산물이다. 특정 제품의 국제경쟁력이 우수하면 수출이 이뤄지고, 열등하면 수입이 일어난다. 나라 전체로는 국제경쟁력이 우수하면 수출이 수입에 비해 더 크게 늘어나고, 국제경쟁력이 열등하면 수입이 수출에 비해 더 크게 늘어난다. 그렇다고 국제경쟁력이 우수하다고 수출이 마냥 늘어나고, 열등하다고 해서 수입이 마냥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수출이 더 많이 늘어나면 외환의 유입이 상대적으로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 나라의 통화가치가 상승하며, 이에 따라 국제경쟁력을 제약하게 된다. 만약 통화가치가 지나치게 상승하면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입이 더 많이 늘어남으로써 국제수지는 악화된다. 그리고 국제수지 악화가 심화되면 외환보유고가 줄어들어 외환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 결국은 통화가치가 하락하지 않을 수 없고, 이에 따라 환율이 상승하면 국제경쟁력이 다시 향상된다. 한마디로 환율이 국제교역의 균형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국제수지가 만성적인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하는 나라도 있다. 이것은 속도의 문제 때문이다. 통화 가치 상승에 따른 국제경쟁력 약화를 이겨낼 정도로 생산성향상이나 기술 발달이 빠르게 이뤄질 경우 국제수지가 만성적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통화 가치 하락에 따른 국제경쟁력의 상승이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산 성향상이나 기술발달의 속도가 느릴 경우 국제수지가 만성적으로 적자를 기록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성적인 흑자국의 경우 통화가치의 상승이 국제경쟁력의 향상속도와 균형을 이루게 되거나 만성적인 적자국의 경우 통화가치의 하락이 국제경쟁력의 저하속도와 균형을 이루게 되면 국제수지는 다시 균형을 이루게 된다. 다만 생산시설의 확충에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균형화 과정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1985년의 플라자 합의에 따라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환율이 불과 2년 사이 절반으로 떨어졌지만 미국과 일본의 국제수지 불균형은 해소되지 못했다.
환율은 이와 같이 국제교역의 균형자 역할 외에도 국내 경기를 상승시키기도 하고 하강시키기도 하는 중요한 경제적 역할을 한다. 심지어 환율을 정책적으로 지나치게 억압하면 경제적 파국이 초래되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 후반에 겪은 외환위기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궁극적으로는 환율정책이 경제를 번영시키기도 하고 쇠락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환율정책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환율변동의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환율변동의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환율이 어떻게 변동하고 국내 경기가 어디로 흘러갈지를 가늠해 성공적인 경제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다.
환율이 중요한 이유
최근 10여 년 사이 환율이 급등과 급락을 거듭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놀라울 정도로 뜨거워졌다. 해외에 거주하는 가족에게 송금해야 하는 기러기 아빠나 외국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 외국과 거래하는 사람, 외국에 투자하거나 외국 자본을 빌려오는 사람 등은 더욱 그렇다. 환율이 오르면 해외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기러기 아빠는 더 많은 돈을 송금해야 한다. 수입업체라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하고, 수출업체라면 더 높은가격을 받을 수 있다. 환율이 내려가면 당연히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환율변동과는 상관없을 것 같은 내수기업도 그 영향을 크게 받는다. 수입품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품가격이 오르고 이에 따라 국산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내수업체는 단기적으로 좀 더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고, 반대로 환율이 떨어지면 수입품가격이 떨어져 국산품의 가격경쟁력이 낮아져 이익이 적어지거나 심지어 손해를 보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환율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 에 없다.
사실 환율의 역할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거나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과 관계없이 흔히 간과하기 때문에 환율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으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환율의 변동은 국가경제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며, 기업과 개인의 경제적 성쇠를 가를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가진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고 환율이 급등해지면서 명백한 사실이 됨에 따라 국민적 관심도 그만큼 커졌다. 700~800원 수준이던 달러환율이 외환위기가 절정에 이른 1997년 연말에는 2,000원을 넘볼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환율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통 사람들로서는 충분히 인식하기 어려웠다. 그저 외환보유고가 고갈 직전에 이름으로써 환율이 폭등한 정도로만 여겼을 뿐 환율이 경재난을 부른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다음에 이어서)
<회의주의자를 위한 경제학(최용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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