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쟁력이 경상수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국제경쟁에 있어 가격경쟁력도 중요하지만 품질경쟁력은 더욱 중요하다. 품질경쟁력의 향상속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 더라도 국제경쟁력은 더 높아진다. 실제로 2001년 이후 2007년까지 비교 그만큼 계속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오히려 크게 늘고 국제 적 오랜 세월 동안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짐으로써 수출의 가격경쟁력은 수지도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그 원인은 품질경쟁력을 높임으로써 국제 경쟁력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환율은 1,291원에서 929원으로 무려 28%나 떨어졌고 이에 따라 수출의 가격경쟁력도 계속 떨어졌지만 수출은 그 6년 사이 2.5배가 증가해 매년 평균 17%나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국제수지는 최소 53억 달러에서 최대 282억 달러의 대규모 흑자를 지속적으로 기록했다. 왜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을까?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짐에 따라 수출가격을 계속 상승시킬 수밖에 없었음에도 어째서 수출은 크게 늘어난 것일까?
그 이유는 품질경쟁력의 향상속도가 그만큼 빨랐기 때문이다. 품질경쟁력의 상승이 수출가격의 지속적인 인상을 가능케 했고, 이것이 수출을 급증시키고 국제수지도 흑자를 기록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품질경쟁력은 왜 그처럼 빠르게 향상되었을까? 환율이 점진적으로 하락하면 기업의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생산성향상과 품질향상 그리고 신제품 및 신기술개발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경쟁력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아래 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환율이 하락할 때 수출은 오히려 더 증가했다. 반대로 환율이 상승할 때는 수출이 오히려 줄었는데, 이때 기업은 이익을 충분히 남기게 되므로 기술개발이나 생산성향상을 위해 굳이 위험한 투자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환율의 하락속도가 경쟁력의 향상속도보다 더 빠르면 경상수지는 당연히 적자로 돌아선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환율의 하락속도가 경쟁력 향상속도보다 더 빠르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은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 필수적이다. 현실적으로 경쟁력 향상속도가 비교적 빠르게 높아질 때 환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경쟁력의 향상속도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지 않을 경우 환율의 하락은 조만간 상승으로 반전하곤 한다. 따라서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면 경쟁력의 향상속도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다고 판단할 수 있다.
정리하면, 환율의 변동은 국제수지가 결정하고 국제수지는 자본수지와 경상수지로 구성된다. 그중 자본수지는 근본적으로 투자의 수익률, 즉 성장잠재력이 결정하고, 경상수지는 국제경쟁력이 결정한다. 그런데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은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국제경쟁력은 성장잠재력의 일종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왜 그럴까? 다소 복잡한 문제지만 이를 정확히 이해해두면 환율의 변동은 물론이고 경제의 흐름을 읽어내는데 적잖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은 무엇이 결정하는가
성장잠재력, 즉 잠재성장률은 지속 가능한 최고의 성장률을 뜻한다. 다시 말해 지속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록한 최고의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이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해질까? 일반적으로는 물가가 불안해지면 성장이 지속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세계 경제학계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에만 해당하는 정의일 뿐 다른 나라에는 국제수지의 악화라는 중요한 변수가 한 가지 더 있다.
미국의 달러는 국제적인 기축통화이므로 국제수지 악화가 미국의 경제 성장을 제약하는 경우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는 국제교역의 확대에 필요한 통화를 추가로 공급하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세계 경제의 통화를 공급함으로써 국제교역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는 달러의 공급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그 가치가 크게 하락하지 않거나 오히려 상승하기도 한다. 국제무역에 필요한 달러의 수요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외환보유고가 필요한데, 외환보유고 축적을 위한 수요도 함께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는 국제수지 적자가 지나치게 크지만 않으면 경제성장을 제약하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의 금융위기 직전까지 매년 7~8천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지만 달러의 가치는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미국의 성장률은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유럽연합EU의 통화인 유로도 마찬가지로 최소한 유럽과 유럽과의 교역에서는 국제적인 기축통화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들은 국제수지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더라도 경제성장이 제약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은 경상수지 적자가 2008년에 GDP의 9.6%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심각한 외환위기는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나라들은 사정이 다르다. 국제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불가능해진다. 물론 경상수지가 적자일 때는 자본수지 흑자 즉 외채의 도입을 통해 만회할 수 있지만 외채는 무한정 늘어 날 수 없으며 언젠가는 갚아야 하므로 여기에 의존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외국자본의 국내 유입이 불필요하다거나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외채나 외국 자본의 국내 유입은 오히려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외채나 외국 자본의 유입은 해외 소득의 국내 이전을 의미하고 해외 소득의 국내 이전은 국내의 수요를 증가시켜 성장률을 높이곤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큰 경상수지 적자는 외환보유고를 고갈시키거나 환율을 크게 상승시킨다. 만약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면 우리나라가 1997년 말에 겪은 바처럼 극심한 경제난을 동반하는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설령 외환위기는 당하지 않더라도 환율상승까지 막을 수는 없다. 외채가 계속 누적되게 할 수는 없으므로 장차 환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자본 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서 환율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다. 또한 환율이 크게 상승하면 석유와 같은 에너지는 물론 각종 공업용 자원과 식량자원의 수입가격이 크게 오름으로써 물가불안이 초래되고 그러면 아무리 성장률이 낮더라도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해진다.
사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당했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잠재성장률에 대한 미국식의 정의 때문이다. 미국에서 직수입한 경제정책에 몰입했던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물가만 불안해지지 않으면 성장률은 높을수록 좋다고 여겼고, 통화팽창과 재정팽창을 통해 성장률을 크게 높였다. 화폐발행액의 증가율은 1993년에 42%에 이르렀고 재정지출의 증가율은 1995년에 43%에 달했을 정도였다.
이런 적극적인 경기부양정책에 따라 1994년과 1995년의 성장률은 각각 8.5%와 8.9%를 기록했지만 때마침 수입개방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물가불안은 일어나지 않았다. 값싼 수입품이 국내 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함에 따라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그와 같은 높은 성장이 지속 가능할 것이라 예상했다.
(다음에 이어서)
<회의주의자를 위한 경제학(최용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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