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와 통화제도의 개략적인 역사
대공황은 결국 세계대전으로 비화되었다. 세계대전이 끝나 갈 무렵 미국과 영국 등 세계의 주요국들은 세계 경제의 무역질서와 금융질서에 대한 포괄적인 점검에 들어갔다. 보호무역과 금본위제가 공황을 심화시키고 장기화시켰다는 반성을 바탕으로, 무역자유화를 위해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을 탄생시켰고, 국제금융질서의 회복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을 설립했다. 신생 독립국들과 후진국들의 경제개발을 지원하는 국제개발은행(IBRD), 즉 세계은행을 설립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후 GATT와 IMF가 국제경제의 기본체제로 성립에 따라 세계 각국은 금 확보를 둘러싼 분쟁이나 환율경쟁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시행하고 다른 나라들은 달러본위제를 시행함으로써 통일적인 통화제도가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나라들이 막강했던 미국의 국제경쟁력을 차츰 추월했고, 국제수지가 차츰 악화되면서 금이 유출되자 미국의 금본위제는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 결국 미국은 1971년 금태환 정지를 선언했고, 세계 경제는 금본위제에서 차츰 벗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화폐발행이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지나친 화폐증발은 물가불안 등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따랐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것이 물가연동제다. 물가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상승하면 금리를 인상하는 등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경기가 하강할 때는 금리를 인하는 등 팽창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물가연동제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물가연동제를 처음 도입한 미국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초장기 경제번영을 누림에 따라 이 제도는 크게 확산되었다. 미국은 최근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즉 2007년부터 20여년 동안이나 경기의 순환주기는 비교적 길고 변동의 폭도 작아 장기간 안정적인 호황을 누렸다. 이러한 경제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물가연동제에 입각한 선제적인 금리정책 때문이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세계 통화제도의 변동을 선도한 미국의 통화정책 변천사
세계 대공황이 발발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금본위제가 시행되었다. 이 시기에는 특별한 통화정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국제수지는 금의 유출입을 의미했고 금의 유출입은 통화의 증감을 불렀으며, 이것이 자동조절장치 역할을 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수지가 악화되면 통화가 줄어들고 물가가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환율이 조정되고 통화량도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금본위제는 금의 산출량에 의존함으로써 통화의 공급을 불안정하게 하고 경기의 진폭을 더 크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뒤에 자세히 언급할 신용수렴원리가 본격적으로 작동할 때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불러왔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은 그 결정판으로서 이는 많은 국가들이 관리통화체제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관리통화체제 아래에서도 금본위제는 대체적으로 유지되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제통화기금과 일반관세협정이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의 축으로 성립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자동조절장치 역할을 한다고 맏은 금본위제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레튼우즈 합의에 의해 고정환율제가 채택됨에 다라 자동조절장치가 원활하게 작동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가 간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의 격차는 점점 더 커졌으며, 이는 국제수지의 불균형을 불러왔다. 환율을 급속하게 조정하지 않으면 국가별로 금이 대규모로 유출입될 위험이 점차 커졌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되면 세계적인 통화위기가 발생하고 보호무역주의되 강화될 것이며, 결국 새로운 형태의 경제공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마침내 1971년 미국이 금태환을 정지시티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금본위제는 막을 내렸다. 이로써 관리통화제와 함께 변동환율제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느 계기가 마련되었다. 중앙은행은 금태환의 압박에서 벗어남으로써 통화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고, 이에 다라 통화정책이 중요한 경제정책으로 부상했다. 특히 이때는 세계대전 후에 대대적인 유행을 탔던 케인스경제학에 입각한 재정정책이 심각한 휴유증과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여서 통화정책의 중요성이 한결 더 커졌다. 이 세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프리드면(Milton Friedman)을 위시한 통화주의자들이었고, 여기에 루카스(Robert Lucas)를 비롯한 합리적기대론자들도 가세했다.
사실 통화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물가안정 그리고 국제수지 균형, 나아가 금융시장의 안정 등이 모두 통화정책에 달려 있다. 그런 만큼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을 신중하게 시행한다. 특히 물가안정이 유지되는 범위 안에서 통화량을 적절하고 충분하게 공급하는데 정책적인 관심을 집중한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무제한 발행할 수 있는 관리통화체제 아래에서는 물가를 안정시킬 통화의 관리가 핵심적인 정책과제로 부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근의 통화정책 역사를 뒤돌아보면 이 점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음에 이어서)
<회의주의자를 위한 경제학(최용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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