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경기의 향방을 갈랐다
불행하게도 국내 경기의 하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3/4분기에는 전기대비 성장률이 -0.4%로 떨어졌고, 4/4분기에는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해 무려 16.8%를 기록했다. 만약 이 추세가 1년 동안 지속되었다면 국내총생산의 6분의 1이 사라질 판이었다.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적 파국이 닥쳤을 때나 일어날 법한 급속한 경기하강이 이때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국내 경기를 이처럼 빠르게 하강시켰을까? 흔히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지만 이는 틀렸다. 세계 금융위기가 국내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경로는 수출이다. 특히 원화로 환산한 수출이 국내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경기가 추락하던 때의 원화 수출 증가율은 오히려 더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성장률이 1.0%로 떨어졌던 2008년 2/4분기에는 원화수출 증가율이 34.9%에 달했고 성장률이 -0.4%를 기록했던 3/4분기에는 45.4%에 달했다. 성장률이 -16.8%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던 4/4분기조차 33.1%나 증가했다. 수출이 이처럼 크게 증가했다면 경기는 빠르게 상승하는 것이 정상인데, 왜 국내 경기는 오히려 하강했을까? 경기를 하강시키는 데 훨씬 더 강력한 변수가 작용한 것이 아니라면 이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경기를 더 강력하게 하강시키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는 잠시 뒤에 살펴보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그 뒤에도 벌어졌다. 원화수출 증가율이 0.5%로 뚝 떨어졌던 2009년 2/4분기에는 성장률이 오히려 크게 상승해 9.8%에 달했고, -3.1%를 기록했던 3/4분기에는 성장률이 무려 13.4%를 기록했다. 이런 사실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내 경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 경기의 하강은 물론 경기상승 조차 수출과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2009년에 들어서면서 경기가 갑자기 급상승으로 돌아선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들 재정지출을 대폭 늘린 정책이 경기를 상승시켰다고 분석하지만 이 역시 틀렸다. 재정지출 확대가 경기를 상승시켰다면 2008년 3/4분기와 4/4분기의 경기하강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이때의 재정지출 증가율은 각각 22.5%와 16.2%로서 예년의 3~4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또한 2009년에는 재정지출 증가율이 1/4분기의 46.3%에서 2/4분기에 24.2%로, 그리고 3/4분기에 6.8%로 하락 폭이 점차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빠르게 상승했으며, 3/4분기의 성장률은 놀랍게도 13.4%를 기록했다. 이런 사실은 재정지출과 성장률 사이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는 국내 경기가 하강했다가 상승한 원인이 다른데 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그 원인은 환율의 상승과 하락 때문이다. 우선 2008년에는 환율이 상승하자 수입원자재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우리 경제는 석유나 석탄 등 에너지자원은 물론이고 밀이나 옥수수 등과 같은 식량자원, 목화나 철광석 등과 같은 공업용원료와 사료와 같은 다른 자원들도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수입가격이 크게 오른 것이다. 그 영향으로 국내물가 역시 당연히 급등했다. 표에서 보듯이 2008년 2월까지는 3.6%였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월에는 3.9%로 올랐고 4월에는 4%를 넘어섰으며, 5월에는 5%를 넘기고 7월에는 5.9%까지 상승했다. 물가가 이렇게 오르면 소득변동이 없는 한 더 적게 소비할 수밖에 없게 되므로 경기는 하강하게 마련이다.
더 심각한 것은 생산자물가상승률이었다. 1월의 4.2%에서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3월에 6%에 이르렀고 6월에는 10%를 돌파했으며, 7월에는 12.5%를 기록했다. 생산자물가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선도한 것이다. 이처럼 생산자물가상승률이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더 높으면 무엇보다 기업의 경영수지가 크게 악화된다. 판매가격보다 생산가격이 더 빠르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2008년 중반처럼 그 격차가 5~6%에 이르면 기업의 경영수지는 더욱 심각하게 악화되고, 당연히 경기는 하강한다. 이익이 줄면 기업은 생산을 줄이고 고용도 줄이며, 고용이 줄면 소득이 줄어 소비까지 줄어드는 등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2008년에 국내 경기가 빠르게 하강했던 배경에는 이같은 경제원리가 작동했다. 물론 당시에는 국제 석유가격이 빠르게 상승했고, 이것이 국내 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석유가격(텍사스 중질유 기준, 배럴당 가격)은 1월의 93달러에서 3월에는 100달러를 넘어섰고 6월에는 134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그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국내총생산 중에서 수출용을 제외한 석유의 순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는 전체 물가를 이같이 크게 올릴 수는 없었다. 실제로 석유가격은 2001년 말 19달러에서 2007년 말에는 91 달러까지 거의 5배나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3%대를 기록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안정적이었다.
따라서 환율의 상승이 물가를 결정적으로 상승시켰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전체 수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훌쩍 넘어선 것이 물가를 결정적으로 상승시킨 것이다. 현실적으로 환율상승은 수입원자재는 물론 각종 시설재 및 소비재 등 전체 수입품의 가격을 상승시켰고, 이것이 물가상승률을 높였다. 물가가 이렇게 크게 오르자 소비자의 구매력이 위축되면서 결국 경기는 하강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다음에 이어서)
<회의주의자를 위한 경제학(최용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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