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중요한 이유
다행히 외환위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했지만 환율은 1998년 연초 이래 줄기차게 떨어졌다가 2000년 말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고 2001년말에는 1,326원까지 치솟았다. 때마침 경기가 빠르게 하강하자 환율은 다시 중요한 현안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환율이 왜 이처럼 갑자기 빠르게 상승했는지, 그리고 환율이 경기동향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관심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었다. 2001년말 1,326원까지 상승했던 환율은 그 뒤 5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하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경제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2007년 10월 말에는 907원까지 떨어졌으니 그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수출업체와 내수업체는 이러한 환율하락으로 인해 가격경쟁력 약화에 직면했고,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품질과 기능면에서 더 뛰어난 제품을 생산해 가격을 높여 가야 했다. 기업들의 이러한 피나는 노력 덕분에 국가는 산업의 고도화를 이룩할 수 있었고, 환율하락으로 일반 국민도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 유학과 해외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환율의 영향력은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900원대 초반이었던 환율은 정권이 교체되던 2007년 말부터 갑자기 상승세로 돌아서더니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이듬해부터 그 상승세가 본격화되었다. 결국 2008년 5월에는 1,000원을 돌파했고 9월에는 1,100원 11월에는 1,500원도 넘어섰다. 불과 1년 사이 원화가치가 60% 이상 하락한 셈이다. 이러한 급격한 환율변동은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었을 때나 벌어질 법한 일이었다. 당연히 그 영향은 곳곳에서 크게 드러났고, 이에 따라 환율변동에 대한 관심이 유례없이 커졌다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환율동향을 보도했고 경제전문가들은 너도나도 환율 전문가를 자처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보통 사람들도 환율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관심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환율은 언론이나 경제전문가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감당한다. 환율은 경제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기업의 사활은 물론 나라의 명운까지 좌우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 경제가 극심한 경제난을 겪은 것도 환율급등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다시 말해 환율에 대한 정책대응이 부적절했기 때문에 2008년과 같은 극심한 경기후퇴가 발생한 것이다. 이 문제를 올바르게 지적한 경제전문가는 거의 없었지만 최근 우리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환율변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환율이 경기의 향방을 갈랐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권은 '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이라는 꿈 같은 공약을 내세워 출범했고, 경제를 살리는 데 올인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그 첫걸음은 성장률을 높이는 일이었다. 성장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출을 늘려야 하고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환율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거둬들여 환율 정책적으로 상승시켰다.
2008년 2월의 국제수지를 보면 경상수지는 약 24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자본수지도 4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3월에는 경상수지가 약 1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자본수지는 약 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2월과 3월의 종합수지(경상수지+자본수지)는 약 2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셈이다. 그렇다면 외환보유고는 그만큼 줄어야 했는데, 외환보유고는 1월의 2,619억 달러에서 3월에 2,642억 달러로 오히려 23억 달러가 늘었다. 이는 그 액수만큼, 즉 국제수지 적자액 25억 달러와 외환보유고 증가액 23억 달러를 합한 48억 달러만큼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거둬들었음을 뜻한다.
그 결과 1월 말 937원이었던 달러환율은 3월 말 992원으로, 불과 두 달 사이 5.9% 상승했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연간상승률은 40%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달러가치가 단기간에 아주 빠르게 상승한 셈이다. 다른 경제변수들과 마찬가지로 환율변동 역시 가격카오스원리의 작동에 따라 관성을 갖기 마련이어서 이러한 상승추세는 흔히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된다. 실제로 달러환율은 5월 말 1,000원을 돌파했고 9월에는 1,100원까지 올라가면서 그 뒤로도 줄기차게 상승했다.
덕분에 수출은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늘어났다. 1월에 15%였던 수출증가율이 2월과 3월에는 각각 18%로 상승했고 4월부터는 20%, 7월에는 35%를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수출업체들은 이익을 더 많이 남길 수 있게 되자 더 열심히 수출에 매진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수출이 크게 증가했으므로 경기는 당연히 빠르게 살아나야 마땅했다. 성장률은 이명박 정권이 공약한 것처럼 7%대로 크게 올라야 했고, 최소한 연초에 정부가 목표로 삼았던 6%대의 성장률은 달성하는 것이 마땅했다. 1990년대까지는 수출이 10%만 넘어도 성장률은 7%를 넘곤 했던 것이 역사적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는 오히려 하강으로 돌아섰다. 다음에 나오는 표에서 보듯이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3/4분기와 4/4분기의 전기대비 성장률(연율)은 각각 5.3%와 5.2%였는데,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2008년 1/4분기에는 4.4%로 떨어졌고 2/4분기에는 1.0%로 뚝 떨어졌다. 당시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나빴던 것도 아니다. 미국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점점 심각 해지고 있긴 했지만 2008년 상반기 중의 성장률은 전년도 4/4분기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일본이나 유럽도 2008년 1/4분기까지는 성장률이 플러스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수출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은 해외 경기가 국내 경기에 미친 영향이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증명한다.
(다음에 이어서)
<회의주의자를 위한 경제학(최용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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