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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원리 #환율 #회의주의자를 위한 경제학10

경제지식 - 프랑스 환율정책이 성공과 실패(2) 프랑스 환율정책의 성공과 실패 프랑스의 외환보유고가 급증하자 통화팽창과 그에 따른 기분안에 대 우리가 대두했다. 그래서 외환보유고를 런던 금융시장에 예치했고, 이 것으로도 부족해 파운드 선물을 대규모로 매입했다. 그 결과 프랑스은행이 보유한 현물 및 선물의 외환총액은 1928년 5월에 14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프랑스은행은 채권을 보유한 나라들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은행과 잉글랜드은행은 유럽의 약소 통화들의 안정화정책에 있어 누가 지도권을 행사하느냐 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싸우고 있었다. 정치적 패권을 둘러싼 이러한 인식이 프랑스에 심각한 경제난을 불렀고, 나중에는 독일에게 점령당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외화자금의 해외 예치는 국내 소득의 해외 .. 2022. 5. 8.
경제지식 - 프랑스 환율정책의 성공과 실패 (1) 프랑스 환율정책의 성공과 실패 1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는 승전국으로서 독일로부터 전쟁배상금을 받을 권리를 확보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하고 1870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거액의 전쟁배상금을 지불한 바 있었으므로 프랑스가 패전국인 독일로부터 전쟁배상금을 받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까지도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1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각종 기간시설과 산업시설 복구에 나섰다.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적자는 독일로부터 전쟁배상금이 들어오면 해결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독일 경제가 역사상 유례없는 천문학적인 초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심각한 경제난에 처하자 전쟁배상금의 지불이 어렵게 되었다(당초의 전쟁배상금 규모도 계속 줄여주.. 2022. 5. 7.
경제지식 - 영국 환율정책의 처참한 실패 (1) 영국 환율정책의 처참한 실패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심각한 물가불안에 시달렸다. 배급제가 해제되자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전쟁 직전에 물가보다 더 빠르게 상승했던 임금이 물가불안에 가세했다. 전쟁 중 이미 2배나 상승한 물가는 1919년부터 1920년 사이 추가로 50% 상승했다. 이러한 물가상승은 기업의 이익을 증가시켜 생산을 촉진함으로써 경기를 빠르게 상승시켰다. 회사 설립이 줄을 이었고 주식투자가 활기를 띠었다. 부동산투기까지 일어나자 물가불안은 더욱 심각해졌다. 물가불안을 방치하면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서처럼 초인플레이션으로 발전하여 파멸적인 위기를 불러 올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영국 정부는 종전 직후 물가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통화긴축과 재정긴축을 시급히 시행.. 2022. 5. 2.
경제지식 - 국제경쟁력 및 성장잠재력과 환율 중 어느 것이 앞서는가 국제경쟁력 및 성장잠재력과 환율 중 어느 것이 앞서는가 경제에 있어 독립적인 변수는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경제의 변수들은 서로 크든 작든 관련을 맺고 있다. 그중에서도 어떤 변수들은 서로 밀접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 어느 한 변수가 원인으로 작용하여 어떤 특정의 결과를 빚어내면 그 결과는 다시 원인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결과를 빚는다. 결과가 다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계기적인 변동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눈앞에 벌어지는 경제현상을 만든다. 국제경쟁력 혹은 성장잠재력과 환율은 그런 대표적인 변수들이다.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상대적으로 더 높으면 국제수지(종합)가 흑자를 나타내며, 국제수지가 흑자를 나타내면 외환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환율은 하락하고 국내 통화의 대외가.. 2022. 5. 1.